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나사카 히로시 (문단 편집) == 만주에서 남해로 == 1944년 3월 1일, 남부 방면의 전황이 악화되면서 동원령이 내려지자 후나사카를 포함한 59연대 1대대는 제14사단의 직할에 있던 2연대, 15연대와 함께 남방으로 이동하게 된다. 3월 12일, [[뤼순]]에 집결한 59연대는 뉴기니 전선에서의 역상륙과 물가에서의 전투 훈련을 받았으며 이후 25일부터 공식적으로 제31군 중부태평양파견군 사령관인 '''오바타 히데요시'''(小畑英良) 중장의 지휘를 받게 되었고 28일, 부대는 [[다롄]], [[진해]], 모지(門司)항을 거쳐 4월 3일 [[요코하마]]에 입항했다. > 오랜만에 일본의 항구와 자연을 눈앞에 둔 병사들은 감개무량했다. [[도쿄]]의 건너편 도치기 현에는 부모와 형제가 살고 있었다. 한번 만나고 싶었다. 한번 만나고 나면 미련없이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 소망은 이룰 수 없었다. >---- >-'''『英霊の絶叫―玉砕島アンガウル戦記』''' p. 32 이후 4월 6일에 [[요코하마]]를 출항, 다테야마에 입항한다. > 다테야마의 산과 도시를 보고 있으면 다시는 못 보게 되지 않을까 하며 일본에 대한 끊기 어려운 정이 북받쳐 왔다. 일본에서 태어나 자란 이십여 년의 다양한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북만주의 얼어붙은 풍경에서 탈피해 고향의 또렷한 녹색을 접하면 생각을 잊기가 어려웠다. 제공권도 제해권도 이미 미군에게 빼앗기고 있을 때였다. 남방의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닷속에 매장당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英霊の絶叫―玉砕島アンガウル戦記』''' p. 32 4월 7일에 다테야마를 출항, 부대는 [[http://www.weblio.jp/content/%E6%9D%B1%E5%B1%B1%E4%B8%B8|토산마루(東山丸)]], [[http://www.nyk.com/rekishi/knowledge/history_luxury/05/|노토마루(能登丸)]], [[http://homepage2.nifty.com/i-museum/19440501asosan/asosan.htm|아소산마루(阿蘇山丸)]]라는 세 척의 수송선에 나눠 타고 해군 호위함의 호위를 받으며 남태평양으로 향하던 도중 치치시마[* 훗날 [[치치시마섬 식인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곳이다.]에 11일 간 기항한다. > 내남양(內南洋)은 일본군에게 있어서 무방비 상태와 마찬가지였다. "미군의 각 섬 상륙은 가을 즈음일 것이다."라는 일본 수뇌부의 예상을 깨고 미군은 [[사이판]], 티니언, [[괌]]등에 중폭격을 반복했다. 동시에 미군의 잠수함은 내지와 내남양을 잇는 항로에 나타나 육군의 파견선단을 노리고 공격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보내진 수십 척의 선단이 침몰 당해 이미 수만의 육군이 바닷속 물귀신이 되어 사라졌다. 예를 들어, 괌으로 급행했던 제29사단 18연대는 잠수함 공격을 당해 모두 바다에 내던져져 다수가 사망하고 얼마 안되는 생존자들마저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로 사이판에 헤엄쳐 상륙하는 꼴이었다. >---- >-'''『英霊の絶叫―玉砕島アンガウル戦記』''' p. 41 4월 18일에 치치시마를 출항, 23일에 팔라우 본섬의 관문 역할을 하는 코로르 섬에 도착한다.[* 英霊の絶叫―玉砕島アンガウル戦記 p. 41] >이 섬은 남하하는 일본군의 선단이 꼭 들르고, 상가의 성황도 심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던 것인가, 아름다운 카나카 족의 미인도 아니고 야자의 녹색도 아니었다. 거기에는 3월 말 미군의 대공습의 흔적이, 악마의 발톱으로 긁어낸 듯한 파편의 코로르 섬이 눈에 비칠 뿐이었다. "이건 엄청난 것이다...." '''우리는 그 참사를 보고 처음으로 전쟁을 직접 느껴, 등골에 냉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북만주와 내지에서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전황은 심각했던 것이었다. >---- >-'''『英霊の絶叫―玉砕島アンガウル戦記』''' p. 41 이후 59연대의 선발대는 코로르 섬에서 남쪽으로 51km를 나아가[* 자서전에선 이렇게 서술되어 있지만 앙가우르 섬은 코로르 섬의 남서쪽에 위치하며 거리도 직선으로 59km가 조금 넘는다. 일개 병사가 작전에 대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극히 미미했을 것이므로 체감거리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4월 27일 오후 2시에 앙가우르 섬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음 날에 본대와 군기가 도착한다. >이 날로부터 넉 달 뒤, [[펠렐리우 전투|똑같이 행동한 페리류 섬[* 펠렐리우의 일본식 표기이다.]의 제2연대]]와 함께 적의 기습 상륙을 받고 [[옥쇄]]할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누가 알았겠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